촬영을 이틀인가 앞두고 못간다고 해버렸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스케쥴이라는 결론이 났기 때문에.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오히려 내게 그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걸까
라는 질문을 했다.
나름 인류를 사랑하며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여태까지 나는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혹은 나만큼 헤아리지 않는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내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손목 테이핑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의료센터에서도
스포츠 테이프를 사러간 약국에서도
나의 약점 고백에 낯선 사람들은 내게
누워서 쉬길 권하고,
마라톤을 권하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말해주고,
나의 건강을 응원해주었다.
이 낯선 따뜻함에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약점을 보이면 나를 미워할까봐
몰라도 아는 척, 못해도 잘하는 척, 부족해도 가득한 척하면서 살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은 나만큼 나쁘지 않다.
내가 제일 나쁘다.
그래서 나는 나와 친해지기가 제일 어렵다.
나는 결국 나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이 이야기의 끝은
개똥이는 개과천선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보다는
지금도 엉망진창이지만 분명 어제보다 잘하고 있어요 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