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이모는 내게 늘 큰 꿈을 꾸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날엔 어김 없이 책을 선물했다.
이모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은 보통 부모님이 집을 비우거나 많이 늦는 날이었는데, 사실 그런 날은 별로 많지 않아서 이모를 보는 건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이모가 다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명절에나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대신 핸드폰이 생겼기에 다른 방식으로 서로 안부를 물었다. 물론 주로 먼저 물어오는 사람은 이모였다.
당시 우리집 사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나는 모르지만 이모는 내게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부모님께 말하지 말고 자신에게 한 달에 한 번 목록을 써서 보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수집욕이 있던 나는 신나서 매달 갖고 싶은 책을 몇 권씩 적어 보냈다. 그때 샀던 책들은 아직도 내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고, 그 중엔 지금 봐도 이해를 못하는 더럽게 어렵고 비싼 책도 있다. 하지만 이모는 내 이해도를 의심하거나 가격을 되묻는 일 없이 늘 쿨하게 "보냈어^^" 라고 대답했다.
똑똑한 조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랐던 이모의 평범한 소망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렇게 이뤄지는 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건 큰 꿈이 너를 크게 만들거라 말하며 책을 증거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증거를 나는 믿었다. 지금은 책이 말하는 세상을 내 마음대로 의심하지만, 그 때의 기억이 책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월급을 아껴가며 조카에게 책을 사주던 이모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다만 그 마음이 이제야 너무 고마울 뿐이다. 나는 덕분에 좋은 취미를 가졌고, 크는 내내 책을 가까이 하며 살 수 있었다. 가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가도 책을 열고 글자 속에 마음을 파묻으면 희미해지던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공황을 이겨내려 했던 여러가지 중에 책을 보는 것은 나에게 꽤나 확실한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자주 죽고 싶었던 것 같다. 사춘기가 유난히 길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마주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던 때 역시 열 여섯, 열 일곱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기를 바라면서 누구든 나를 불러주길 바라던, 여전히 사춘기 때문이라고 나의 가시를 무마하던 때. 십대 후반의 나는 그랬다.
나쁜 생각을 밥 먹듯 하던 내가 결국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잠들기 전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자랄 거라 말하던 이모의 진심 어린 주문 때문이다. 그리고 종이로 된 작은 세상을 내 손에 안겨주던 이모는 이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역할로서 산다.
내게 큰 꿈을 꾸라고,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하던 이모는 더이상 없다. 대신 괴로움의 순간에 칼대신 책을 들게 해준 은인임은 변함없다. 내가 보다 많이 행복해져서 이모가 삶의 빛을 잃어가는 순간에 꼭 나의 행복을 선물해야지. 오늘 그렇게 다짐했다.